▶ 이영묵의 마야-치첸 이사 여행기 2
▶ 김치와 고추장을 담가먹는 한국인의 후예들

지배자의 방. 아무래도 제사장이 지배하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발해 유민 이동설
치첸이사에서 2일 밤을 지내고 우스말(Uxmal)을 가는 길에 유카탄 주의 주도(州都)인 메리다(Merida)로 가고 있다. 문득 어느 한국 고대 역사 연구가가 마야인들의 풍습과 유물에서 공깃돌 놀이, 줄넘기, 그리고 태극 문양이 발견되었다면서 멕시코시티 주위의 아즈텍 문명, 그리고 유카탄 지역의 마야 문명이 고구려, 또는 발해 유민이 알래스카를 거쳐 멕시코까지 남하하여 세운 문명이라고 역사 해설을 하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소위 Mezoamerica 역사에서 유물연대를 유물을 측정하고 나서 Classic Period를 AD 250-900년으로 잡고 있고, Pre-classic period에서도 유물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에 고구려, 발해 이민 운운은 너무 상상력이 지나친 것 같다. 물론 발해, 고구려가 망할 당시 유민 일부가 갈 수도 있었겠지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스페인 정복자가 16세기에 쳐들어 올 때까지 신석기 시대를 그대로 이어 왔음을 주지해야 한다. 이는 종족 이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 즉 먹거리와 문명의 전래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비가 풍족하지 않아 쌀은 아니라 할 수 있겠으나 좁쌀, 수수 같은 작물, 그리고 청동기, 철기 문명의 이기가 전해지지 않았으니 고구려나 발해의 유민이 왔다 해도 마야 문명 전성기에 소수의 숫자이었을 것이다.
애니깽과 용설란
그러나 진정 우리 한국 사람들의 발자취는 근세의 서글픈 역사에서 시작된다. 1905년 1,031 명의 조선인들이 노동계약이 아니라 노예 계약 같은 조건으로 속아서 이곳 유카탄 반도에 애니깽(Henequen)에 도착한다. 사실 애니깽이란, 지명이 아니라 선인장의 일종인 소위 용설란으로 이 잎의 섬유질로 밧줄을 만드는 원료의 이름이며 합성섬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큰 선박용 로프로 아주 유용한 원료이었다. 그들은 노예 같은 노동조건으로 고생을 하다가 합성섬유의 출현으로 할 일이 없어지자 뿔뿔이 흩어진 모양인데,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유카탄 주의 수도인 메리나에 약 5,000명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메리다에 도착했다. 먼저 이곳 전통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평균 일인당 5달러로 음식이 꽤나 먹을 만 했다. 메리나는 유카탄 주의 수도로서 도시의 규모는 작다. 하지만 정복자 프란시스코 몬테호(Francisco Montejo) 부자가 2대에 걸쳐 설립한 이 도시는 전형적인 스페인 풍 도시이다. 성당, 플라자 사면으로 관청, 상가들이 있고, 시내를 돌아보게 하는 마차가 긴 줄로 손님을 기다리는데 안타깝게 손님은 안 보인다.

조선인 사진과 일본 화폐. 혹시 이것이 한인단체와 독립자금 모금 이야기인지 궁금하다(왼쪽). 이 사진이 유카탄의 마지막 한국인이라니 슬픈 생각이 든다(오른쪽 위). 도산 안창호 선생과 태극기. 도산이 이곳에 일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
먼저 이곳에 있는 고대 박물관에 갔다. 치첸이사에서 본 것 정도의 재탕이었다.
그러다가 메리다 시 홍보 박물관에 들어서자 그만 숨이 막혔다. 복도 가운데에 애니깽 원료가 밧줄을 만드는 마차 같은 것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고 한 코너에는 이곳 유카탄 특히 애니깽 지역과 메리다에서의 한국 이주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진들을 보니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곳에 1년 머물렀다고 하기도 하며 태극기가 보이니 아마도 그 분이 교육, 그리고 독립을 도우려 했고, 또 이곳에서 독립 자금 모금 등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한국인의 부부 사진과 함께 메리다의 남은 마지막 한국인이라는 전시장의 직원 말에 시대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 속에 녹아든 것이 안타까웠다.
또 문득 최 모 교수이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애니깽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150명의 용감한(?) 사람들이 배를 훔쳐 타고 쿠바로 탈출해서 그곳에서 둥지를 틀었다 한다. 그리고 그들의 3대 후손인 호세 서(Jose Suh)를 워싱턴 DC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의 정체성을 몰라 자기가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그의 ‘조선의 씨’ 라는 제목의 시가 잠시 생각도 났다. 어찌되었던지 그 한국 혼혈인은 서(徐)라는 성을 지키고 있고, 침(鍼)도 놓는다 했다.
오늘날 유카탄 유민들은 혼혈의 혼혈, 말도 잊었지만 많은 후손들이 성(姓)도 지키고 양배추지만 김치도 담가 먹고, 고추장도 먹고 있단다. 그리고 쿠바에도 약 1,100명의 한국계 쿠바인이 있다고 한다. 슬픈 역사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꽤나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K pop 등의 인기로 한국계 멕시코인들, 쿠바 인들이 모국에 관심과 호의를 갖기 시작한다는 것이 반갑다.

하룻밤에 지은 마술의 피라미드라지만 사실은 300년에 걸쳐 지었다.
마법의 피라미드
이곳 메리다에서 멕시코 화폐 페소가 필요해서 환전도 하고, 10달러정도인데 꽤나 좋은 데킬라 술을 한 병 사고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잠시 잠이 들었나 했더니 우스말(Uxmal) 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전체가 유네스코의 보존지역으로 등재된 우스말에서 2일간의 탐방을 시작했다.
보통 마야인들의 문화, 문명을 Classic period를 AD 250-900년으로 잡고 그 전을 Pre-classic, 그 이후 스페인에게 정복당할 때까지인 AD 1500년대까지를 Post-classic으로 잡는다. 우스말의 유물을 보니 Pre-classic 때부터 시작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Post-classic 유물이다.
피라미드 정상이 오발 모양인 것이 압권이다. 본래 우스말이란 3번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피라미드를 하루 밤에 지어서 마법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설에서는 말하지만 사실인즉 300년에 걸쳐 지었다한다.
서쪽에서 보면 서쪽이 정면인 것 같고, 남쪽에서 보면 남쪽이 정면인지 3면이 아리송하고 좀 어지럽다. 피라미드를 지나 소위 74화랑에 들어서니 동서남북의 건물들이 놀랍다. 먼저 수녀의 성(Nun’s Quadrangle)이 눈에 들어온다. 비의 신들의 모습의 조각으로 한 면을 이루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장군 보습의 인간 조각상이 보인다.
post period에서 부터는 제사장이 절대자가 아니라 왕 같은 존재가 통치를 한 것 같다. 그리고 통치자 건물에서 시멘트 같은 횟가루도 눈에 띤다. 그리고 다산, 풍년을 비는 남자의 성기, 여자의 자궁 등 역시 post classic 시대의 변천이 재미가 있다. 뜨거운 햇빛에 꽤나 돌아 다녔지만 저녁 불빛 쇼를 다시 보러 밤에 다시 찾았다. 하지만 수준은 역시 별볼일 없었다.

다산과 풍년을 빌며 남자의 성기를 조각해 놓았다.
캔쿤을 거쳐
이번 여행은 나이가 비슷하고 또 모두 은퇴한 4쌍으로 구성되어 1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다녔으므로 가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 서서 시골 식당도 들려 토속음식을 아주 싸게 먹기도 하고, 이곳 저곳 기웃거릴 수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캔쿤에 돌아와서 Xcarat이라는 민속촌과 디즈니랜드를 믹스(Mix)한 곳에서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우리 일행이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장에서 서로 ‘Dont worry, take easy!’ 하며 서로 웃었다. 캔쿤의 관광 안내원이나 그곳 유흥지에서 누구나 우리가 버스를 놓칠까,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면 언제나 그들이 쓰던 말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의 걱정이 진짜로 문제이었고 시간도 아슬아슬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해결도 못하면서 그냥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 뱉는 말이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비행장에서 보니 다 별 탈 없이 잘 넘어갔다. 그러니 “걱정 마, 마음을 놓으라구” 하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한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말인지도 모르겠다,
유카탄 반도여 다음 언제 다시 보자. 그동안 걱정 안하고 마음을 놓고 살고 있겠다. Don’t worry, Take easy !
<
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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