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벨 트레일에서 만나는 보드워크, 블루벨 트레일에 지천으로 깔린 블루벨, 앙증맞은 노란색의 엘레지(Trout Lily). (왼쪽부터)
사방에 봄이 밀려왔다. 여기 미국사람들은 3월 20일 즈음인 춘분을 봄의 시작(First Day of Spring)이라고 하는데, 우리 정서에는 춘분을 봄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는 것 같다. 수선화, 개나리, 목련이 이미 피었고 많은 꽃망울이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미 봄이 와있는 게 아닐까.
지난번에 이민사회 신앙공동체가 어르신 모시고 봄나들이하기에 괜찮은 곳으로 버지니아 주립 수목원을 소개하였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가까운 장소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동안 한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버지니아 센터빌의 불런 파크에 있으니 가히 반나절짜리 봄나들이라 할 만하다. 1.5마일의 순환 트레일인 블루벨 트레일(Bluebell Trail), 25가지가 넘는 야생화가 피는 트레일. 이 트레일의 이름인 블루벨은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파란색의 종 모양의 꽃이 피는 야생화이다.
3가지 트레일 코스
이 트레일을 즐기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짧게는 왕복하는데 40분 정도 걸리는 코스, 다음은 한 바퀴 도는 50분 코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복 2시간 15분의 코스. 각각 코스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가장 긴 코스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이 코스는 블루벨 트레일에 불런-오코콴 트레일(Bull Run- Occoquan Trail)의 일부를 더한 것이다.
가장 긴 이 코스는 버지니아주 28번 도로인 센터빌 로드의 옆에 있는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센터빌에서 매나사스로 가는 방향인 28번 도로 남쪽으로 가다가 658번 지방도를 지나친 후 길이 왼쪽으로 살짝 방향을 트는 느낌을 받는 곳이 있는데 그 지점의 오른쪽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거기를 지나치면 센터빌과 매나사스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를 건넜다는 것은 이미 목적지 주차장을 지나쳤다는 얘기.
불런-오코콴 트레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면 불런 쪽으로 안내판이 있는데 그것들을 들여다본 후 내려간다. 내려가면 바로 불런이 보이고 길이 좌우로 나있는 것을 본다. 그 길이 불런-오코콴 트레일이다. 남쪽의 파운틴헤드 지역공원(Fountainhead Regional Park)에서 시작해서 북쪽의 불런 지역공원(Bull Run Regional Park)까지 이어지는 18마일이 조금 넘는 트레일이다.
강을 따라 걷는 평탄한 구간도 있고, 작은 산을 넘기 때문에 약간 땀이 나는 곳도 있고 또 고원지대를 걷는 느낌을 주는 곳도 있는 아름다운 트레일이다. 왼쪽이 남쪽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북쪽으로 가는 길인데, 여기서는 오른쪽 즉 북쪽 그러니까 불런 파크로 방향을 잡는다.

메이애플(Mayapple)의 어린 싹, 산수유와 혼동하기 쉬운 생강나무(Spicebush), 우아한 흰색의 커트리프 투스워트(Cutleaf Toothwort)(왼쪽부터).
50년만에 본 말똥구리, 말통속에서 움트는 새싹…그것만으로 감동
출발하자마자 작은 언덕을 넘게 되는데 이게 이 코스에서 만나는 유일한 언덕이다. 이 언덕을 지나고 나면 나머지는 평탄한 길만 남아있다. 트레일 바닥은 포장이 되어있지 않다. 자갈을 깨서 깔아놓은 것도 아니다. 그냥 맨땅에 낙엽이 쌓인 후 밟혀서 부스러진 것뿐이니까 발바닥이나 무릎관절에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길에 박힌 돌도 없다. 나무뿌리가 바닥에 깔린 것도 아니다.
다만, 이 트레일은 승마 트레일과 공유하는 구간이 있어서 때로 말의 배설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의 배설물 때문에 이 트레일에서 물구나무서서 말똥을 굴리던 말똥구리를 거의 50년 만에 본 적이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또한 말의 입으로 들어가서 말의 소화기관을 통과한 후에도 살아남은 씨앗이 말똥 속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생명에 대한 경이 또한 감동이었다.
25분에 1마일 걷기
트레일은 강을 따라 걷게 되는데 10분쯤 지나면 16마일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불런-오코콴 트레일의 남쪽 끝에서 부터의 거리를 뜻한다. 그리고 15분 쯤 더 가면 불런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만나게 된다. 이 교량이 보이는 곳에서 불런을 내려다보면 트레일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온 곳이 있는데 여기가 퍽 재미있는 곳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던 물줄기의 일부가 이 오목한 곳으로 들어와서는 여기서 한 바퀴 돈 후에 다시 본류로 합류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오목한 곳으로 들어온 물줄기의 일부가 바로 본류에 합류하지 않고 이곳에 계속 남아있다. 트레일 주변 바닥에 있는 죽은 나뭇가지 몇 개를 던져놓고 가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두 개의 나뭇가지가 여전히 그 곳에 남아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후 10여분을 더 걸으면 17마일이라고 적혀있는 이정표를 만난다. 25분에 1마일을 걸은 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속도를 측정해두는 것이 트레일을 걸을 때 도움이 된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1마일을 25분에 걷는 것은 조금 느린 편이다. 하지만 기웃기웃 구경하기 좋아하는 50대 끝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느린 게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강변해본다.
왼쪽으로, 아님 오른쪽으로 갈까
17마일 이정표를 지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게 되고 그러고 나서는 곧 목적지인 블루벨 트레일에 도착한다. 28번 도로 옆의 주차장에서 4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정해야한다. 하지만 이 블루벨 트레일은 순환(loop)트레일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꽃들만을 보는 게 목적이라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왕복을 하면 되고, 같은 길을 왕복하는 게 싫다면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왼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태껏 걸어왔던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길 왼쪽으로 불런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숲이 형성되어있다. 이 길을 걷는데 길바닥에 사슴 발자국이 보이더니 앞에서 흰꼬리 사슴 세 마리가 그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오른쪽으로 멀어져간다.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닌데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화이트 트레일
28번 도로 옆의 주차장에서 출발한지 대략 한 시간 만에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길 건너편에 ‘화이트 트레일(White Trail)’이라는 안내판이 인사를 건넨다. 그 트레일 오른쪽으로는 디스크 골프장이 있고 멀리 아틀란티스 워터파크(Atlantis Waterpark)가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스팔트길을 걸으면 왼편에 워터파크 주차장이 보이는데 블루벨 트레일만 다녀올 생각이라면 이곳에 주차하게 된다.
5분 정도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에 다시 트레일 입구가 보인다. 별도의 표지판이 있는 것은 아니고 불런-오코콴 트레일 안내판과 마치 정원장식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빨간 다리가 있는 곳이 입구이다. 그 입구 너머에 화이트 트레일이라는 안내판이 또 인사를 건넨다.
컵런 개천을 따라
불런 파크에서 출발하는 블루벨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면 곧 기다란 보드워크를 만나게 된다. 보드워크 두 개를 지나고 나면 그 이후로는 다시 그 익숙한 모양의 길인데, 이 길이 블루벨 트레일의 진수이다. 길 좌우에 블루벨이 가득하다. 급하게 가지 말고 찬찬히 즐기면서 가자. 이런 군락지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블루벨 트레일에는 블루벨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 많은 야생화가 있고 노오란 꽃이 피어서 산수유로 착각하기 쉬운 생강나무도 있다. 뭐가 있는지에 관한 안내판이 있으니까 녀석들의 이름이 알고 싶거들랑 들여다보시고. 거듭 얘기하거니와 찬찬히 즐기시기를. 이 길의 왼쪽에 있는 개천의 이름은 컵런(Cub Run). 큰 물줄기는 황소천(Bull Run), 작은 물줄기는 송아지 개울(Cub Run). 퍽 재미있는 작명이다. 물론 컵런의 물줄기는 불런에 합류하게 된다.
레드버드 트리
온갖 꽃을 구경하다 걷다보면 불런-오코콴 트레일과 만나는 지점에 다시 돌아온다.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불런-오코콴 트레일로 접어든 후 그 길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두 개의 이정표를 지나고, 불런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을 통과하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센터빌과 매나사스를 잇는 다리가 보인다. 그 다리를 지나치지 않고 왼쪽으로 올라서면 주차해둔 차를 만난 수 있다.
대략 2시간 15분 만에 주차장으로 복귀한 셈이다. 이 주차장 뒤편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모양이 마치 벚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 나무가 레드버드 트리(Redbud Tree)일거다.
안전에 관한 주의사항 하나. 이 주차장에서 센터빌 방면인 28번 도로 북쪽으로 가려면 출구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교통량이 많은 곳이므로 안전하게 좌회전할 수 있을 때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한다.
체력에 맞는 코스 선택
앞에서 얘기한 세 가지 코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해본다. 블루벨 트레일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코스가 있으므로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나이 드신 분을 모시고 간다면 가장 짧은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중년의 그룹이라면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좋겠다.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2시간 조금 넘는 코스가 좋을 것이고 더 운동이 필요한 사람은 불런-오코콴 트레일의 더 남쪽에서 출발하면 된다. 모쪼록 체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여 봄날을 즐기신다면 소개하는 이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겠다. 코스에 대한 대략의 설명을 다시 해본다.
가장 짧은 왕복 40분 코스는 불런파크의 아틀란티스 워터파크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블루벨 트레일로 접어든다. 이 트레일을 따라 걷다가 불런-오코콴 트레일을 만나면 돌아서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야생화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의 50분짜리 코스. 역시 불런파크의 아틀란티스 워터파크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블루벨 트레일로 들어선다. 위의 왕복 코스와 다른 점은 불런-오코콴 트레일을 만나면 돌아서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서 처음 출발지로 돌아온다는 것. 갔던 길을 돌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선택.
그리고 2시간 15분짜리 코스는 꽃구경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연과 좀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코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점을 밝혀두어야겠다. 하나는 이 트레일의 아쉬운 점인데 가까이에 불런 파크 사격장이 있어서 총소리를 들어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여기에 있는 꽃 사진들은 지난해 3월 24일에 촬영한 것이라는 것.
주차장 정보
●28번 도로 옆 주차장
-주소: 7122 Centreville Rd, Centreville, VA 20121
-좌표 : 북위 38.803508, 서경 77.449691
-관리인 없음, 주차료 없음
●불런파크의 아틀란티스 워터파크 주차장
-주소: 7700 Bull Run Dr, Centreville, VA 20121
-좌표 : 북위 38.802295, 서경 77.476615
-관리인 없음, 주차료 없음
(불런파크의 경우 외지인은 소정의 입장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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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성식 (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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