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난데일서 불과 30분거리… 어, M1 소총이 있네

한국전 당시의 방한모와 판초 우의(왼쪽). M1 소총.
미국 정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로비 단체 중에 첫 번째는 유태인들의 단체이고 그 다음이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수많은 총기 사고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가 잘 안 되는 것이 이 단체의 막강한 로비력을 말해준다. 이 단체의 본부는 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본부 건물 안에 총기박물관(National Firearms Museum)이 있다.
I-66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갈색 바탕 간판에 이 박물관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이 단체가 운영하는 총기박물관은 미국 내에 세 군데(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 미주리 주의 스프링필드, 뉴멕시코 주의 레이톤)가 있는데 전국총기협회의 본부가 있는 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가 가장 규모가 크다.
◆애난데일서 9마일= 총기 규제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각각의 견해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거의 절대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총기 규제에 관해 얘기할 생각은 없다. 사는 곳 가까이에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단체의 본부가 있고 그 본부 건물 안에 박물관이 있으므로 직접 가서 보고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총기박물관은 애난데일에서 9마일 거리, 3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 젊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개인화기인 M1, 칼빈, M16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 말고도 많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이 박물관인데 특히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생각해보라. 미국 영화 치고 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될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 자동차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렵듯이 총 없는 영화 역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각설하고 이제 박물관으로 가보기로 하자.
◆주차장= 총기박물관은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워이플스 밀 로드(Waples Mill Rd) 길가에 있는 전국총기협회 본부 건물 안에 있다. 건물을 찾아 구내로 들어서면 건물 앞 좌우측에 주차공간이 있다. 만일 이 주차장에 자리가 없으면 건물 중앙에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되는데 건물 뒤편에 무척 넓은 주차장이 있다.
건물 뒤편의 이 주차장으로 간 후 돌아서 건물을 보면 붉은 색으로 NRA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물 앞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야 보이는 이 단체의 이름을 보면 이들의 조심스러움을 보는 것 같다. 스스로 자부심은 있지만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서 자신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만나고 싶지는 않은 그들의 딜레마.
도로에서 본부 건물을 바라보면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출입구가 있는데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건물(South Tower)의 입구로 들어간다.
◆입장하는 방법= 이 입구는 그냥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 옆에 달린 인터컴의 단추를 눌러 건물 안의 사람과 얘기를 해야 한다. 박물관 방문이라고 하면 문을 열어준다. 들어서면 안내소를 만나는데 박물관의 입구는 그 오른쪽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유리벽 너머 작은 전시공간이 있어서 이미 박물관 구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박물관 입구는 계단을 올라 오른쪽에 있는데, 입구 앞에 지도가 있으니 이를 챙긴다. 이 박물관은 주제별로 15개의 전시관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유리 전시장의 수가 90개가 넘는다. 그리고 전시되는 총은 무려 3,000정. 그러니 지도가 있어야 그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지도는 두 장을 챙기는 것이 좋다.
보통의 지도는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이 있고 그 그림 바깥에 그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여기 지도는 조금 다르다. 한 면에 지도가 있고 그 뒷면에 설명이 있다. 그러니 그림과 설명을 연결해서 보려면 종이의 앞뒤를 연신 뒤집어가며 보아야하는데 그러자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장은 지도가 있는 편을 펴고 다른 한 장은 설명이 있는 편을 펴서 동시에 보는 게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이 박물관의 지도는 두 장을 챙기게 된다.

영화 관련 총기 전시관 입구(왼쪽).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서 해당 총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피터슨 전시관=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곳이 피터슨 전시관(Petersen Gallery). 피터슨 내외의 기증품 400여점으로 꾸며진 전시관인데, 여기서 부터 이 박물관의 존재목적이 분명해진다. 이 박물관은 교육용이 아니다. 이 박물관 최고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총기가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피터슨 전시관은 그런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공간이다.
이 전시관에는 아름다운 장식이 있는 총이 많은데 그 장식은 예술품이라 할 만큼의 고급스럽다. 수집용 총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여기에 있는 총은 살상용이라는 느낌 보다는 예술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은 선수가 사용했던 총도 있다. 생명을 해치는 총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총인 것이다. 첫 번째 전시관에서 부터 사람들이 총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 것이다.
◆찰턴 헤스톤과 루스벨트= 이 첫 번째 전시관뿐만 아니라 이 박물관 전체는 사람들이 총에 친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퍽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총이 전시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각 전시품에 관한 설명이 전시물 부근에 있는 것은 기본이고 박물관 여러 곳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총에 아름다운 장식을 해서 예술품의 경지에 오르게 한 것이 있는가 하면, 영화 속에 나오는 총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표적물을 잘 맞추는 명사수나 총을 무척 빨리 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벤허’나 ‘십계’로 유명한 영화배우 찰턴 헤스톤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국 초기의 메이플라워호, 미개척지 탐험의 루이스와 크라크, 다니엘 분 이야기가 나오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나치 독일의 최고위 간부 헤르만 괴링의 총이 전시되어 있다.
911 당일에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경찰의 권총을 전시함으로써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하고. 평면적인 전시에 그치지 않고 마네킹을 이용한 디오라마도 두어 개 있다.
그 외에 본부 건물 안에 전국총기협회가 운영하는 실내사격장이 있는데 협회 회원은 1시간 사용료가 15달러이다. 그런데 미성년자를 동반하는 경우 그 미성년자는 무료이다. 또 매주 목요일 오후부터는 여성들의 사격장 이용에 할인도 해준다. 미성년자와 여성에게 까지도 총이 친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무척이나 많은 총이 전시되어 있기에 임의로 몇 가지만 뽑아서 얘기해본다.
◆핸들 돌리는 개틀링 건= 1번 전시관의 A전시장에는 개틀링건(Gatling Gun)이 있다. 핸들을 돌리면 여러 개의 총신에서 총알이 나가는 그 총 말이다. 1870년대와 1880년대 생산된 개틀링 건이 7대 전시되어 있으니 대단한 수집이다.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개틀링 건은 다른 곳에 또 있다. 그 영화에 사용되었던 개틀링 건 옆에 들소 머리를 박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들소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구식 장총= 다니엘 분(Daniel Boone, 1734-1820). 이 시대에 사용했던 구식 장총(Musket)을 처음 본 것은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초반께다. 당시 동양방송(TBC)에서 디즈니랜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몇 주에 걸쳐 다니엘 분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고 거기서 구식 장총을 처음 보았다.
거기서 주인공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상대로 가짜 주술사 노릇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인 EIEIO는 무척 신기했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구나, 했었는데 나중에 ‘박첨지는 밭 있어 그래그래서’라는 가사가 붙어서 불리는 것을 알았다.
◆한국전의 방한모= 한국전 관련 전시물도 있다. 벽에 있는 설명은 M1 소총에 관한 것이지만 전시물은 겨울 방한모와 겨울용 판초. 당시 미국 군인들에게 1950년대 한국의 겨울 추위는 무척 고통스러웠음에 틀림없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을 비롯한 모든 유엔군 병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여기에는 한국전 관련 훈장도 몇 점 전시되어 있어서 더욱 숙연해진다. 아, DC 안에 있는 한국전 관련 조형물은 여름 장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알고 계시려나?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바라본 본부 건물 모습인데 왼쪽 건물 1층에 박물관이 있음.
◆M1 소총= 다음은 M1 소총. 1970년대 고등학생 시절 교련시간에 처음 만져본 총. 그 때는 정해진 시간 안에 이 총을 분해하고 다시 결합하는 것으로 교련시험을 봤고, 총구 끝에 동전을 얹어놓고 방아쇠를 당긴 후에도 동전이 떨어지지 않고 얹혀 있어야 합격하는 시험도 봤다. 일년에 한 번 있는 교련검열 때에는 눈을 가리고 분해와 결합을 하는 시범조 학생들도 있었다.
◆M16 소총= 그리고 M16 소총. M1 소총에 비해 한결 날렵해진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온 총. M1이나 칼빈 소총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았을 때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지던 총. 그런데 직접 쏴보고 놀랐던 총. 사격장의 사대에서 표적지 까지 거리가 200m 아니면 250m였는데, 그 먼 거리에서 쏘았는데 세 발 중 두 발이 표적지에 맞았다. ‘참 대단한 총이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에 나온 총들= 한 전시관은 영화와 관련된 총들만 모아놓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매그넘 포스’(1973년)에서 나온 권총, 최근에 개봉된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등장한 저격용 장총 따위가 있었는데 총 보다는 몇 개의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잡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배우시절에 주연한 영화(LAW and ORDER, 1953년),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에서 보았던 존 웨인의 ‘알라모 요새’(1960년)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 중에서 백미는 ‘바람과 라이온’. 이 영화 포스터 앞에서 그 옛날의 숀 코널리와 캔디스 버겐을 생각하면서 한참이나 서있었다. 1975년도 작품.
◆허리띠에 숨겨진 총= 몰래 숨겨진 총도 있다. 나치시대의 독일에서 만든 것인데, 허리띠 버클에 총이 숨겨져 있다. 필요한 때에 버클 뚜껑을 젖히면 두 개의 짧은 총신이 튀어나오고 두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그런 총이다.
◆기념품 판매장과 위안부 기록= 온갖 종류의 총을 살펴본 후 박물관을 나서면 그 앞에 기념품 판매장이 있다. 그 안에 있는 것들도 대부분 총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안에 무척 많은 책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념품 판매장의 절반이 총과 관련된 책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이 건물 안에 예약제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있기는 하다. 그 도서관의 규모는 알지 못하지만 이 판매장에 있는 책들의 양도 대단하다. 그 중에서 놀라운 책 하나를 발견한다. 일본병(日本兵, HEITAI)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1931년-1945년 사이의 일본군이 사용한 군복, 장비, 개인용품 등을 정리한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방대한 사진과 설명이 있어서 놀랐는데,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스페인 사람(1961년생)이어서 두 번째 놀란다. 이 책 안에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있을까 하고 들여다보았더니 역시 있다.
‘Thousands of women were sent from Korea and reduced to slavery serving in establishments such as these.’ 고맙다. 참 대단한 저자이다.
◆월-금요일 1시에 투어= 많은 박물관이 그렇듯이 이 박물관 역시 무척이나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지 않은 나머지 사연은 직접 가서 살펴보시기를.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에는 오후 1시에 투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안내석 부근에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 네 가지가 비치되어 있는데 이 역시 무료이니까 관심 있는 사람은 챙기시기를.
방문 정보
● 주소 : 11250 Waples Mill Road, Fairfax, VA 22030
●인터넷 : http://www.nramuseum.org/
●개장 : 아침 9:3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관 : 성탄절 등 주요 공휴일
●비용 : 입장료 없음, 주차료 없음(주차관리인 없음)
●기타 : 음식물 반입할 수 없으며, 애완견 동반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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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성식 (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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