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시리즈/ 나이는 없다. 일하는 노년!
▶ 6.25 참전용사인 90세 VA 박진우 옹

박진우 옹이 자신이 일하는 마운트 버넌 고교에서 청소차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삶의 뒤안길, 노년. 청춘은 길지만은 않았다. 세월 앞에 어느덧 몸과 마음은 느슨해지고 대부분 떠밀리듯 은퇴를 결심한다. 자연의 순리다. 하지만 은퇴설계와 안락한 노후 대신에 아직도 청년 못지않은 기백과 푸른 열정을 쏟아내는 노년의 삶들도 있다.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며 일흔을 훌쩍 넘겨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사람들. 나이를 잊은 채 오늘도 뜨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역의 노익장들을 소개한다.
남들 은퇴할 나이인 환갑에 취직
고교 건물 청소원으로 28년 근무
오후 2시30분. 매일 그는 유니폼을 챙겨 입는다. 왼쪽 가슴에 페어팩스 카운티 스쿨 마크가 선명하다. 스프링필드 집을 나서 운전대를 잡은 그의 염색 않은 머리에 눈이 내린 듯하다. 그가 향한 곳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집 인근의 마운트 버넌 고등학교. 정든 직장이다.
“예순 하나에 이 학교에 취직해 지금까지 쓸고 닦고 내 집처럼 해왔어요. 결근이나 지각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28년이네요. 아직 더 일할 수 있는데… 이제 그만 쉬어야겠지요.”
15일 은퇴를 한 박진우 옹. 서울 청운동 자하문에서 난 1928년생이니 올해 나이 아흔 살이다. 그가 이 학교에 몸을 담은 건 1989년. 두 해 전인 87년 시애틀을 거쳐 버지니아로 오면서 잡은 첫 직장이다.
인터뷰하는데 책임자가 그를 보고 물었다한다. 팔이 왜 그러느냐고?
“제가 그랬죠. 한국전 때 싸우다 다친 거라고.”
6.25때 그는 미군 제5공군 통신대대 소속으로 케이블 가설을 맡았다. 카투사의 원조 격인 부대원이었는데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육군하사관학교에 입교했다 한다. 훈련을 받다 전황이 급해지자 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김화 관망산 전투에서 그는 파편에 맞아 왼쪽 팔에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제가 다친 사연을 듣더니 처음 6개월 견습을 해야 하는데 바로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주었습니다. 그 사람도 2차 대전 참전군인이었답니다. 날 믿고 바로 채용해주니 너무 감사했지요.”
남들은 은퇴를 할, 환갑 넘은 나이에 그는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업무는 청소. 12명의 직원과 함께 학생들이 하교한 빈 교실과 복도 등 실내와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다. 무거운 쓰레기봉투도 곧잘 매고 다닌다.
밤 11시. 그는 남들은 모두 잠든 그 야밤에 차를 몰고 퇴근길을 재촉한다. 하루 종일 일해 피곤도 하고 눈도 침침할 나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껏 안경 안 써도 운전에 문제없고 신문도 돋보기 없이 봐요. 아프고 쑤시는 데도 없어요. 학교에서도 다른 직원들보고 도와달란 적이 없어요. 혼자 40파운드는 거뜬히 들어요.”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가 귀띔하는 건강 비결은 걷기. 술과 담배는 아예 하지 않지만 매일 빠트리지 않는 게 집 근처 애코팅코 공원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20리 길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다고 한다.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잠시도 쉬지 않는다. 공원을 걷고 예닮장로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일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래도 아흔 살까지 직장생활 하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은퇴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다.
“몸이 건강한 데 왜 은퇴를 합니까? 쉬면 태만해지고 운동도 않게 되요. 이만큼 일할 수 있게 해준 내 조국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15일 그는 페어팩스 교육청 산하 직원들 중 최고령자이자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이란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학교 직원들은 지난 7일 박진우 옹에 대한 은퇴식을 열고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
은퇴 후에도 그에게는 할 일이 많다. 한국전 때 함께 싸웠던 미군 전우들도 찾아보고 부상으로 고생하는 한인 참전용사들을 돌보는 일도 하고 싶어 한다. 휠체어도 밀어주고 대소변도 치워줄 각오다. 전쟁은 그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그를 단단하게 했다. 90세까지 삶의 현장을 지켜온 그에게 인생의 은퇴란 없다.
젊은 세대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부탁하자 그는 두 마디를 남겼다. “포기하지 말라.” “죽을 때까지 열심히 생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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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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