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명을 가를 세기의 핵 담판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북·미 정상회담이 용두사미로 막을 내리고 있다. 회담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 즉 CVID가 아닌 그 어떤 결과도 수용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정상회담 종료 후 발표된 합의문 어디에도 CVID는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문 서명 직전 기자들에게 ‘포괄적인 합의문이라며 북핵 폐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일정과 방법이 합의문에 명기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합의문에 CVID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곧 CVID”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찌 됐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비핵화 프로세스가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 빠른 시일은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 즉 2년 6개월 이내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기간 내에 북한 비핵화는 가능할까?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전망하려면 크게 4가지 쟁점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반출 일정과 반출 규모, 둘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해체 시기와 방법, 셋째 국제 사찰단의 입북 시기와 사찰 일정과 수준, 넷째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파기 하거나 불성실하게 임할 경우 군사옵션 카드 재등장 가능성이 그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북한의 비핵화는 정말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여론이 다소 우세하지만,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여론의 비중이 작지 않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지만 그래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 보다 북한의 비핵화를 완수할 여건은 좋다. 남북과 북·미 정상이 대화에 임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행위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특히 북·미 정상의 만남은 구 냉전체제만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이후 전후 체제를 뒤엎는 ‘새로운 체제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북한의 비핵화를 믿기 어려운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가 8년 만에 깨졌고,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합의되어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결국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이 단행되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의 경험 속에서 불안감과 의구심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과학적 검증에 대한 것이다.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진다고 해도 북한이 속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핵물질과 핵무기를 숨길 수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매우 타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런 주장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아니라 핵을 가진 다른 어떤 나라일지라도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된다. 북한은 믿을 수 없는데 가상의 다른 나라는 믿을 수 있을까? 즉 비핵화는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 비핵화는 두 단계로 압축된다. 신고와 사찰이다. 우선 비핵화의 검증 주체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될지 미국이 될지는 결정된바 없다. 신고 내용이 충분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찰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사찰이 완료되면 그것이 곧 비핵화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 역시 ‘우리가 북한을 신뢰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귀착 된다. 북한이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북한을 ‘결코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과학적 검증만으로 충분조건이 될 수 없으며 북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완료가 가능 하다는 의미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는 남북과 북·미간에, 그리고 여러 국가 간의 상호 신뢰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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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 한미자유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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