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에서 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책을 다루려 했다. 초고를 써 놓은 뒤 며칠에 걸쳐 조금씩 손을 보고 있었다. 행정부의 압력에 고개를 숙인 유수 대학들의 모습도 소개하며, 나름대로 비판과 탄식을 담아내려 했다. 그런데 이번 주 월요일, 나의 모교인 하버드대학교가 대통령의 압박에 공개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며 고무되었고, 이 글도 상당 부분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우선 1980년 가을에 있었던 일을 하나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1년간 휴학하고 대만에서 중국어를 공부한 뒤, 막 4학년으로 복학한 참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중요한 시사 영상물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국인 한국과 관련된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그 무렵 한국은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집권 중이었다.
그날 그 영상물을 보기 위해 하버드를 비롯한 인근 대학교들과 지역사회에서 많은 한인 학생들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하버드에는 한국에서 유학 온 수재들과 방문·연구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상영 현장에는 그들 중 상당수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현장에 나와 참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학업이나 연구를 마치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 가운데는 훗날 한국에서 고위직에 오른 이들도 여럿 있다. 상영된 영상물은 당시 ‘광주사태’로 불리던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이었고, 그 안에는 참혹한 진압 장면이 담겨 있었다.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었겠지만, 군부 권력의 서슬 퍼런 압박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기에는 용기와 여유가 부족했던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내세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조치 중 대표적인 것은 반유대주의 성향에 대한 강력한 배척이다. 팔레스타인 권리를 옹호하는 발언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정부는 반유대주의나 친팔레스타인 주장이 폭력으로 이어지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은 국외로 추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연방정부는 이러한 주장들이 제기되는 집회를 허용하는 대학들에 대해 연방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위협 앞에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조차 몸을 낮췄다. 마치 과거 군사 정권의 압력에 눌려 숨죽이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러한 위협 앞에서 한때 고개를 숙이던 하버드에 지난 4월 11일 연방정부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공식 서한을 보냈다.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굴욕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행정 구조, 고용, 입학 사정, 외국인 학생 조사와 구성원들의 정치 성향 확인 등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해 연방정부가 마치 감독권을 가진 것처럼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버드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대학의 독립과 헌법상 권리를 돈과 바꾸지는 않겠다고 단호히 밝혔다. 전체로 90억 달러라는 막대한 지원금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결기를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날 밤 바로 22억달러의 재정 지원을 동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 기조는 초중고 공립학교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학생들의 시위나 발언도 조심스러워졌고,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에도 신중함이 요구되는 분위기다. 연방정부의 교육 재정 보조 비중이 낮은 편인 페어팩스 카운티조차, 보조금이 끊긴다면 교육청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다. 자존심과 원칙을 앞세워 연방정부에 맞선다고 해도, 그로 인해 저소득층이나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것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이런 고민은 두 주 전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교육위원회연합회 컨퍼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육위원들은 하나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현실에 허탈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대학교의 결기에서 희망을 본다. 하버드가 이 싸움에서 잘 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문 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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