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안의 오세아니아 여행기10
▶ 뉴질랜드 골프 2 Port Otago Country Club

첫 홀에서 퍼팅하며 그린을 설명하는 앤드류 씨.
마스터 대회의 승자 매킬로이의 눈물
2025년 마스터 골프대회에서 매킬로이의 대 역전 드라마를 보면서 지난 홀 또는 다음 홀보다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집중력과 위기관리 능력이라 하겠다. 운명과 숙명을 가르는 한 타, 한 타는 마치 매순간 주어진 여건에 최우선 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네 인생과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놓아주지 않는 과거에 좌절하거나 미지의 미래에 낙담하기보다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승리의 신이 미소를 지어 줌을 보여준다. 더블보기로 시작한 그는 부활하여 연장전에서 버디로 마무리 하며 참가하는 것만도 영광이라는 마스터 대회에서 17번의 도전 끝에 그린 재킷을 걸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퍼팅을 마치고 오열하는 그의 모습을 본 골퍼들은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빛나는 천부적인 능력과 수많은 다른 대회에서의 승리의 미소의 뒤안길에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눈물의 쓴 소금기도 수없이 맛보았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오래 전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 대회 우승을 확정지은 후 눈물을 흘리며 그의 부친 품에서 울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마치 렘브란트의 명작 ‘돌아온 탕자’ 와 같이.
일상의 피신처
골프에 미쳐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가장 힘들었던 시기 피신처가 골프장이었다. 그러나 주말 18홀은 물론이고 매년 친구들과 떠났던 머틀 비치 골프여행도 매일 미친 듯 일하듯 36홀을 도는 것은 물론 점수와 경쟁에 집착했던 탓에 순순한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즐기는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축복이라 하겠다.
아무리 편한 크루스 여행도 하다 보면 양떼 몰이 당하는 느낌이다. 선박에서 절차를 거친 후 시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는 것은 힘들다. 당연히 자유로운 골프가 그리워졌다. 우리는 뉴질랜드 남섬 더너딘에 도착했고 하선하면 8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오래 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개척한 구 시가지를 가기 위해서는 챔버 항구에서 버스로 시가지까지 30여분 들어가야 한다. 하선하며 항구를 바라보는데 허공을 질주하는 연이 눈에 들어왔다. 남태평양 순풍을 타고 부상하다 급강하를 반복하던 연을 바라보니 자유로워 보이지만 연줄에 매달려 애절히 원을 그며 반복된 삶을 살아왔던 내 인생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벽에 붙은 A4용지 골프광고
뉴질랜드 남섬은 위도상 남극에 가까워 몹시 추워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골프치기 좋은 포근한 날씨였다. 포트 챔버 컨트리 클럽은 살아 숨 쉬는 요술스러운 곳이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박 터미널에서 버스 방향으로 이동하는 동안 10분 여유가 있어 두리번거리는데 벽에 붙인 A4 광고용지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골프! 전화주시면 10분 내로 픽업, 골프코스로 이동, 골프피, 렌탈 클럽 포함 $70” 이라고 영문으로 적혀 있다.
와이프와 의견을 모아 전화하니 터미널에서 나와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면 10분 안에 픽업해준 단다. 얼떨결에 전화를 끊으니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세관원이 웃으며 “그 친구 내가 잘 아는데 금방 올 거요” 하면서 안심시킨다.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10분만에 그린색의 랜드로버가 와서 우리 둘을 픽업하는데 차에서 심한 냄새가 났다. 뒤돌아보니 늑대만한 개가 뒷좌석에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차안은 개집이나 다름없었다.
특이한 골프 코스 자원 봉사자 앤드류
육중한 아저씨(Andrew)는 영국 출신, 우연히 뉴질랜드 왔다가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 그리고 정착했단다. 본업은 전복 수출하는 수산업자였고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했던 전복사업은 성공했고 돈도 벌었는데 이제 무보수 골프 코스 매니저로 일한단다. 골프 코스 재정에 도움이 되고자 크루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코스를 개방했다. 도착한 골프 코스는 Jane Austine의 “Mansfield Park” 을 연상시키는, 이 세상에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난 시절의 영광과 화려함을 뒤로 하고 절제된 고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닫힌 클럽 하우스 문을 열고 라커룸에 물품을 보관한 후 렌탈 클럽, 끄는 카트까지 완벽하게 무장한 후 돈 계산을 했다. 걸어서 일 번 홀로 안내하더니 어라! 본인이 먼저 티 샷을 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려준다. 첫 홀 그린까지 따라오고 전체 코스를 한번 설명해준다. 아무도 없는 코스에서 둘이 치니까 3시간 반 후에 다시 클럽하우스에서 픽업해주겠다며 골프 후에는 서비스로 도시 구경도 시켜준다는 말을 남기고 늑대 같은 우람한 개와 같이 유유히 사라진다.

페어웨이 나무에 박힌 골프 공.
골프코스 위에 떨어지는 굵은 소금 빗방울
그가 떠난 후 사방을 둘러보며 코스의 경이로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코스는 산 능선에 설계 되어 있어 걷기에는 힘든 코스였다. 뒷배경으로 우람한 산 그리고 앞면에는 오타고 항구의 푸른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코스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페어웨이를 구분지어 주는 드높은 사철나무들과 코스 전체를 병풍같이 에워싼 사이프러스 나무들이었다. 정신없이 치다 잠시 한숨 돌리며 바라본 짙은 녹색의 그린과 페어웨이는 매직 그 자체다. 7번 홀에서는 칩 샷으로 버디까지 했다. 8번 홀부터 바다를 내려다보며 치는 샷들인데 그만 공이 나무 방향으로 날아가 찾아보니 나무 한 가운데 박혀 있다. 잘 나가던 경기는 안 풀리기 시작했고 전반이 끝날 무렵 하늘이 검게 변하며 굵은 소금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 빗물들은 금방 물구덩이들을 만들고 작은 도랑에는 급류의 물살이 흘렀다. 이끼 자옥한 긴 돌담을 돌아 마지막 홀에 이르니 앤드류 씨가 우리를 반긴다.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니 빗속에서도 끝마친 라운드가 새삼 뿌듯했다.
공짜 시내구경과 바닷가 식당에서의 19홀
앤드류는 우리를 주요 명소와 산 정상으로 안내하며 항구 전체를 보여주고 우리의 관심사를 물어본다. ‘예술’이라 답하자 야외 조각 예술관으로 안내하며 지역 역사까지 세심하게 설명해주는데 마치 개인 가이드 느낌이 들었다. 고마운 마음에 식사나 같이하자고 제의하니 거침없이 최고 식당을 안다며 곧바로 핸들을 튼다. 하얀 웨딩 가운을 차려 입은 신부같이, 상아의 모습을 한 manor가 나타났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이라 전등과 촛불들이 식객들을 맞이했다. 테라스에서 맛있는 바다요리와 대화를 이어 갔는데 한인 손님은 처음이라며 자신의 인생 스토리와 이 지역의 재미난 뒷이야기로 식탁 위에 웃음꽃이 피었다.
바닷가 식당에 울려 퍼지는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이민자로 살아온 인생사인지 세계 어디를 가나 그곳 이민자들의 삶도 궁금해진다. 비록 같은 영어권이긴 하지만 영국에서 이민 와 사는 그 역시 이민자다. 잘 나갔던 과거와 현실을 이야기하며 우리 셋은 미래를 위해 축배의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식당 스피커에서 로버타 블랙의 솔풀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그렇다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순간들, 가슴 설레는 첫 순간처럼 살고 싶다. 예기치 못했던 뉴질랜드에서의 두 번째 골프는 첫 만남처럼 아름다웠고 진실했다.
문의: 제프 안 (미한 연구원 원장)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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