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무역 전환, 국제무역질서 뒤흔들어…변덕스러운 정책에 혼란 가중
▶ 주식·채권 동시투매에 금융시장 대혼란…美 국채·달러 ‘패권’도 흔들

뉴욕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로이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취임 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수십년 간 이어져 온 세계 무역질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동맹과 우방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자의적인 고강도 관세 정책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의 유예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다가 상호관세 발효 13시간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별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깜짝 발표하는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이면서 혼란과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켰다.
관세 유예 대상에서 제외된 중국은 미국의 145% '폭탄 관세' 부과에 125%의 보복 관세로 맞서며 긴장이 고조됐고, 세계 1·2위 경제 대국 간 관세 협상은 현재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미국을 외국의 약탈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는 달리 과세가 미국 내 물가를 올리고 고용을 위축시켜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나아가 세계 각국은 전후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축이 돼 온 달러화 패권 지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트럼프 '해방의 날' 관세전쟁 선포…철강·자동차 등 품목관세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이른바 '해방의 날'에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외국의 '무역 약탈'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번영을 이루겠다며 대부분 무역상대국에 10% 기본관세를 책정하고, 한국을 포함한 57개 경제주체에는 추가 관세를 적용했다. 한국은 25% 관세율이 책정됐고, 유럽연합은 20%, 일본은 24%, 인도는 27% 세율이 적용됐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다음 날 헤드라인 기사에서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가장 성공적이고 경탄을 받는 (미국) 경제에 대해 완전한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게 더 불안한지, 아니면 현대에 들어 가장 심오하고, 해롭고, 불필요한 경제적 오류를 저질렀다는 게 더 불안한지 알기 어렵다"라고 평가했다.
10%의 기본관세는 4월 5일 발효됐고, 9일 발효됐던 국가별 개별 추가관세는 중국을 제외하고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상호관세 외 품목별 관세도 이미 발효됐거나 추가로 발표될 예정이다.
3월 12일부터 수입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25% 관세가 부과됐고, 4월 3일에는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가 발효됐다. 엔진 등 주요 부품은 5월 3일부터 25% 관세 발효가 예정돼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합성마약 및 불법이민자 대응에 협조하라며 지난 3월 4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 적용 품목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도 품목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 "설마했는데…" 글로벌 주식시장 투매 이어지며 '패닉'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고강도 관세 정책은 글로벌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했다.
처음엔 관세정책을 협상 수단 정도로 인식했던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혼돈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중국이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상호관세 발표 직전 대비 12% 폭락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2020년 '팬데믹 쇼크' 이후 최악의 충격을 입었고, 주식시장 공포지수는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식시장이 급락한 데 이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시장마저 투매가 이어지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일각에선 '금융위기 징후'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 "절대 안 변한다"→"90일 유예" 정책 변덕에 혼란 가중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표 후 중국의 맞대응 조치를 비난하며 "내 정책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자신의 SNS에 중국을 제외하고 국가별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깜짝 발표하면서 발언을 뒤집었다.
처음엔 으름장을 놓았다가 나중에 뒤집는 방식은 관세정책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캐나다와 멕시코 대상 25% 관세도 미 업계 반발이 이어지자 USMCA 적용품목은 대상에서 제외했고, 상호관세 대상 품목에서도 스마트폰, 메모리칩 등 주요 전자제품이 제외됐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관세 정책이 이어지면서 뉴욕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SNS와 트럼프 행정부 각료의 발언 뉴스에 따라 급등락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펼쳤고, 기업들은 사업 전망을 철회해야 했다.
상호관세율 산정도 객관적인 근거 없이 상대국과의 무역적자만을 토대로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한 게 아니냐는 조롱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의 관세율과 행정명령 부속서에 기재된 세율이 달라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 관세發 'R의 공포'…CEO들 "타격 불가피"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높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과는 달리 관세 정책의 부작용은 미국 경제에 물가 상승과 실업 증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직 실물경기 지표에 본격적으로 관세의 충격이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지표는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 흐름을 이어갔고,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는 미국이 10%대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1981년 이후 4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실적발표에서 관세 여파로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외치고 있다.
애플, 나이키 등 해외에 제조시설을 둔 기업들 주가가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미국 가계들이 여행 계획을 재고하면서 항공사 예약도 감소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속속 미국의 경기침체 확률을 높이기 시작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에 접어 들었다는 평가를 내 놓고 있다.
◇ 미중 무역협상 공전…美신뢰 하락에 외국인은 "셀 USA"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제조업 부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면서 미국 경제에 해만 끼칠 수 있고, 나아가 미국 경제의 신뢰도에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미 국채 금리 상승과 달러화 약세로 어느 정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 중앙은행 때리기'와 맞물려 달러화 가치는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고,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고 일부 헤지펀드들이 투자자산을 강제 청산당하면서 한동안 미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기도 했다.
재닛 옐런 전 미 재무장관은 달러 약세와 국채금리 상승에 대해 "투자자들이 달러 기반 자산을 기피하기 시작했으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미국 국채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아온 미국 국채의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과의 무역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않아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백악관 복귀 이후 상호관세, 보복관세 등을 더해 총 145%의 대중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중 무역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해 시장의 낙관론을 키웠지만, 정작 중국은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해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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