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정부 ‘리스트’ 그중에서도 특히 공공안전 명목으로 작성된 수상쩍은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1940년대에 연방 정부가 강제 수용 대상자인 일본계 미국인들의 명단을 작성한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1950년대에 연방 하원 비미국적 활동위원회가 공산주의자 목록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유대인 학자들과 발달장애가 있는 미국인들의 명부를 작성하고 있는 것 역시 우려스럽긴 매한가지다.
그렇다. 이는 지난주에 실제로 일어난 일로 백악관의 비밀자료 남용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 사례다. 지난주, 바너드 대학 교수진과 직원들은 본인이 유대인인지 여부를 묻는 원치 않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스팸이라 여기고 무시했던 이 메시지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발송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은 경악했다. 컬럼비아 대학과 제휴 관계인 바너드 대학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유대주의 십자군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앞서 교수들의 사적 연락처 정보를 정부 당국과 공유하는데 동의한 바 있다.
‘불충’하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연이어 비난했던 극우 대통령이 유대인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으로 등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대인이 잘못될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같은 날 제이 바타차리아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자폐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질병 등록부’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등록부는 비밀에 부쳐진 민간 및 정부 의료기록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사전 인지나 동의없이 작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백신을 상대로 부리는 몽니다. 그는 자신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 숫한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자폐증을 초래한다고 여전히 억지를 부린다.
정신적 혹은 신체적 결함을 지닌 시민들의 명단을 작성했던 독재정권의 지난 역사를 감안하면 NIH의 질병 등록부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런 역사적 비유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자폐아들은 결코 생산적인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케네디의 선동적인 발언 후 불과 일주일만에 바타차리아의 발표가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케네디는 “자폐아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세금을 납부하거나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며 야구는 물론 데이트도 즐기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모든 일이 하필이면 이들을 향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고정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제정된 ‘자폐증 수용의 달’에 벌어졌다. 자폐증 옹호 커뮤니티에 두려움을 안겨준 보건복지부 장관의 망언과 NIH ‘명부’는 과학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두말할 나위없이 관련 단체들은 자폐증 연구와 환자들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원한다. 이들은 (지금의 미국자폐협회가 필자 조부모의 거실에서 창립된) 1965년 이래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과학적 연구에 적대적인 정치적 피임명자, 혹은 장애인을 공개적으로 조롱한 대통령이 문제의 ‘명부’를 책임있게 사용할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관리는 바타차리아의 발언을 철회했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엄밀한 의미의 ‘등록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 데이터 세트를 연결해 자폐증 원인에 대한 연구와 개선된 치료 전략에 통찰력을 제공하는 실제 데이터 플랫폼을 만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행정부가 연방 데이터를 남용한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 당국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구통계 자료를 포함한 숫한 통계 기록을 삭제했다. 또한 다른 민간 행정기록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방 국세청(IRS)은 납세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지난 수 십년간 “이민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납세 기록은 비밀에 부쳐진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사실 의회가 적시한 지극히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면 국세청이 다른 정부기관과 세금 기록을 공유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리처드 M. 닉슨이 개인적인 적들을 압박하기 위해 개인 납세 정보를 남용한데 따른 대응책으로 의회가 취한 제한조치다.
트럼프는 이런 전례와 약속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최고위 IRS 관리들이 연달아 사임한 이후, 국세청은 약 700만 명의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추적해 추방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비밀유지의 의무가 있는 납세기록을 넘기는데 동의했다. 현재 법원에서 이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따지고 있지만 세금 징수액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660억 달러의 연방세를 납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서류미비 이민 노동자들이 이제 더 이상 납세자 명부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부효율성부(DOGE)에 의한 비밀 기록 유출은 다른 민감한 정부 데이터 수집 노력에 대한 대중의 협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비밀 기록이 함부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정신건강 문제나 가정폭력에 대한 공공안전 평가에 필요한 자료 수집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그러나 현 행정부에게 이는 버그가 아닌 기능일지 모른다. 연방 서베이 참여를 줄이고 데이터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트럼프 집권 1기의 의도된 목적이었을 수 있다. 당시 그는 2020년 인구 센서스에 시민권에 관한 질문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했다. 이 질문은 응답률을 떨어뜨리고 공화당이 의회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장난을 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됐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트럼프의 계획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 백악관의 지속적인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선 비판적인 정부기록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치를 옹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소셜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경제 기능을 지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여 유권자들이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고품질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보복적인 정치위원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 모든 일이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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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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