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후보 AI 성장 전략 분석해보니
▶ 주요 후보 100조 투자 내세웠지만
▶ GPU·NPU 확보나 데이터센터 등
▶ 하드웨어·물리적 인프라에 치우쳐
LLM 독자 개발 현실적 한계 분명
실제 수익과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의료·콘텐츠 등 응용 AI 전략 부재
국내 대학원 AI 전공 40% '해외로인재 유출' 막을 연구환경 개선 시급
데이터 활용 전략·금융 지원도 필요2025년 대선을 앞두고 ‘성장’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여야 주요 후보들은 인공지능(AI)을 미래 산업 중심이자 국가경쟁력 핵심 축으로 삼겠다고 경쟁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AI가 미래 사회와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재 제시되는 AI 공약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AI에 투자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단순한 기술주의적 등식은 더 이상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후보들의 AI 정책은 여전히 이러한 기술주의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우선 산업 정책이 너무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낯설고 기술적인 용어들이 공약에 빈번이 등장한다. 데이터센터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 확충도 주요 정책으로 제시된다. 이재명 후보는 ‘GPU 5만 개 확보’, ‘AI 전용 NPU 개발’, ‘AI 클러스터 조성’, ‘광주 AI센터 설립’을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 또한 ‘글로벌 AI 융합센터 구축’, ‘GPU·NPU 원천기술 확보’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여야 모두 'AI 100조 투자 시대'를 외치지만, 이러한 접근은 1990~2000년대의 “인터넷망만 깔면 된다”는 식의 낡은 IT 산업 육성 모델을 연상시킨다.
기술주의적 등식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물리적 인프라에서 갑작스레 소프트웨어 기술의 정점인 대형 언어모형(LLM, Large Language Model) 개발로 급커브를 틀기도 한다. ‘한국형 챗GPT’ 개발이 그 상징적 구호다. 챗GPT와 딥시크(Dipseek)의 성공 사례가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정치권이 상징적 구호로 활용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딥시크가 제한된 하드웨어 환경 속에서도 혁신적인 알고리즘만으로 세계 수준의 언어모형을 구현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도 약간의 인프라만 갖추면 가능하다'는 식의 희망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산업 수익 구조에 대한 검토보다는 국민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이야기 구조에 기댄 공약 제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술 생태계 설계 전략 실종...응용 AI 고려도 부재AI 산업의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물론 챗GPT와 같은 대형 언어모형은 AI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으며, 이렇게 대규모로 훈련된 모델은 이후 구글과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술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역시 이에 맞설 자체 기술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GPU 몇 만 개 확보’ 같은 단순한 정량 목표만으로는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다.
초대형 모델을 단기간에 독자 개발하겠다는 발상 또한 기술적 한계와 국내 현실을 간과한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대형 모델 개발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AI 산업의 수익성과 성장 동력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그 경로 역시 매우 불투명 한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AI 기반 산업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 생태계 전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관점이 필수적인데 현재 후보들의 공약에서는 이러한 통합적·거시적 시야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응용 AI 산업에 대한 고려가 거의 부재하다는 점은 큰 한계로 지적된다. AI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다. 결국 대규모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잡한 산업 수요에 적합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시장에서 상용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제적 성과가 실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와 콘텐츠 분야는 응용 AI가 가장 활발히 적용되는 대표적 사례다. 의료 영상 분석을 통한 질환 조기 진단, 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상용화하고 있다. 콘텐츠·미디어 산업에서는 텍스트 요약, 음성 합성, 영상 생성 등 생성형 AI 기술이 제작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일본과 중국, 미국 등은 이미 응용 AI 기반 시장을 선점해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일부 플랫폼 기업의 개별 노력 외에 정부 차원의 전략은 부족한 상황이다.
▲바우처 지급·저금리 금융 지원도 필요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이러한 응용 AI 서비스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성과 시장 선점 효과가 큰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면 산업 경쟁력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고성능 ‘한국형 GPT’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이며 지금과 같은 경쟁 환경에서는 성능과 신뢰도가 검증된 해외 플랫폼(예컨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인프라)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생존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독자 개발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을 시험하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바우처 지급, 저금리 금융지원 등 실질적인 혼합 전략을 조속히 마련하는 일이다.
더욱이 주요 대선 후보들의 AI 공약에는 데이터 확보 및 활용 전략 역시 생략되었다. 데이터 전략 부재가 AI 산업의 육성에 있어서 가장 큰 적임에도 그렇다. 실제 AI 성능은 연산 능력보다 고품질 데이터 확보와 효율적 활용 여부에 달려 있는 반면 한국은 데이터의 양과 질, 활용 체계 전반에서 구조적 제약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공공 데이터는 양적인 측면은 많지만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해 가명 처리한 정보조차 실질적으로 접근이 어렵다.
반면 민간 데이터는 접근하기도 힘들고 기업 간 공유 체계가 취약하고 법적 기반도 부족해 공동 학습이나 산업 간 연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불어 공공 및 산업 데이터는 형식이 제각각이고 중복·누락·비표준화 문제가 빈번하며, 의료·제조·법률 등 주요 산업의 비정형 데이터는 정제 수준이 낮아 AI 학습에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데이터 인프라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책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고성능 AI 개발을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에 불과하다.
▲AI 인재 양성·확보 언급도 없어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후보들의 AI 성장전략에 인재 양성과 확보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딥시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AI의 진정한 경쟁력은 자본이나 연산 능력이 아닌 혁신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인재에게 달려 있다. 오늘날 AI의 핵심은 연산 속도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설계하느냐이며,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설계형 개발자’ 없이는 기술 주권도 요원하며, 경제 성장도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기술 주권을 지킬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인재가 빠져나가기만 한다. 매년 약 3만 명의 이공계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유입은 4,000명 수준에 그친다. 특히 AI·반도체·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석박사급 인재의 해외 진출 비중이 높으며, 국내 대학원 AI 전공자의 약 40%가 졸업과 동시에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러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재 기반 없이 AI 경쟁력을 논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연구환경 개선과 인재 유치 전략, 실패를 포용하는 생태계 조성 없이 단순한 기술 투자가 해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데이터센터 구축과 LLM 개발은 AI 전략의 하나의 축에 불과할 뿐이다. 응용 산업 육성, 데이터 인프라 고도화, 인재 정책이라는 또 다른 축이 함께 작동할 때에만 비로소 AI는 국가 전략 기술이자 산업 성장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후보들의 AI 성장전략은 챗GPT 및 딥시크 신화를 바탕으로 인프라만 확보하면 될 수있다는 국민현혹 메시지에 가깝다고 본다. 진실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려면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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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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