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방산 신드롬 지속 가능한가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K방산이 각광받고 있다. K팝, K뷰티 명성에 못지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글로벌 4대 강국을 목표로 잡았다. 다만 값싼 무기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수출 증가세도 지난 정부에서 꺾였다. 방산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호황 속 위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전북대 교수)은 18일 인터뷰에서 방산육성의 3대 조건으로 △기술력 △제조능력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꼽으며 “지난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고 국방부를 앞세워 방사청을 무력화했다”고 평가했다. 정책이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방사청장을 지낸 그는 “대통령실-국방부-방사청이 역할을 나눠 맡는 계층적 컨트롤타워”를 강조하면서 “군인 출신 청장은 수출시장 개척과 방산육성을 동시에 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샤넬 같은 명품은 비싸도 사는 것처럼 K방산을 브랜드화해야 구매자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강 전 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각국의 방산수요는 충분하다”면서 “정부가 채비를 갖춘다면 연평균 250억 달러(약 34조 원) 이상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한국일보 본사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가능한가.“충분히 가능하다. 수출역량은 글로벌 10위, 기술은 8위 정도다. 기술력에 제조능력을 갖춰야 무기를 만들어 수출한다. 무엇보다 매일 북한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첨단기술이 앞서지만 완제품을 만드는 건 한국이 뒤지지 않는다.”
-예를 든다면.“KF-21 전투기를 미국의 F-35, F-22와 중국 J-20에 이어 4위로 평가하더라. 프랑스 라팔에도 앞섰다(※항공 전문매체 Aviation A2Z가 6월 발표한 세계 전투기 순위). 우리는 무기개발 방식이 달랐다. KT-1 기본훈련기-T-50 고등훈련기-FA-50 공격기-KF-21 전투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전 단계를 끝내기도 전에 다음 단계 개발을 동시에 추진했다.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이런 나라가 없다. 해군도 육군도 그렇게 해왔다.”
-기술력만 있으면 되나.“제조능력이 뒷받침되고 정부 정책이 일관돼야 한다. 기술이 좋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가성비가 떨어진다. 내구성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나 중국은 불량품 하나로 기업이 망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그 과정에서 생존한 기업들이 방산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 역할은.“무기체계가 끊임없이 발전하는데 기술개발 방향이 오락가락하면 되겠나. 윤석열 정부가 R&D 예산을 확 깎아버리면서 일관성이 깨졌다. 진보, 보수에 상관없이 지속된 방산육성의 원칙을 윤 정부는 말로만 외치고 완전히 망가뜨렸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방사청을 거의 무력화시켰다.”
-무력화라니.
“2022년 대통령직 인수위 때 얘기다. 왜 방사청이 수출하고 다니냐고 하더라. 너희는 전력증강만 맡으면 되니까 우리 군에서 필요한 무기나 잘 만들라고 했다. 방산수출을 국방부가 주도하라는 것이다.”
-어쨌든 방산수출이 잘되지 않았나.“잘된 것 없다. 2022년에 173억 달러로 2.5배 정도 늘긴 했다. 폴란드와 대형계약 덕분이다. 그건 2020년부터 뛰어서 22년 전반기에 거의 완성된 것이다. 문제는 이후 새로 개척한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2023년 방산수출이 130억 달러로 줄고, 지난해 95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국방부는 기업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전략적 접근 없이 해외출장만 다녔다. 수출 현장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놨다. 원래 목표는 2022년에 수출 250억 달러, 23년에는 300억 달러를 넘기는 것이었다.”
-당시 놓친 계약이 있나.“노르웨이는 K9 자주포를 도입해 한국 무기를 신뢰하던 국가다. 2조 원 규모 전차 사업을 놓고 한국과 독일이 겨뤘다. 하지만 국방부는 폴란드 시장이 부각되자 노르웨이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수출을 안 해봤으니 모르는 거다. 그래서 놓쳤다. 하도 억울해서 평가표를 공개해달라고 했다. 우리 K2 전차 성능이 독일 전차보다 좋고 심지어 가격은 2분의 1이나 3분의 1밖에 안 됐다. 윤 정부는 독일과 노르웨이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밀렸다고 변명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식이면 우리가 무기를 수출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방산수출 컨트롤타워’는 지난 정부에도 있지 않았나.“대통령실에 방위사업담당관을 뒀다. 방산을 제대로 모르는 국방부 국장이 맡았다. 방사청장은 육군 장성 출신을 기용했다. 군인들끼리 만나면 서로 ‘브라더’라고 부르며 악수한다. 하지만 시장은 개척하지 못한다. 방산은 경영과 관리가 결합된 분야다. 특히 경영은 시장을 뚫어내고 미래비전을 세우고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는 것이다. 어제는 적이었다가 오늘은 절친이고 내일 또 적이 될 수 있다. 때려 없애야 할 대상은 없다. 그런데 군인은 어떤가. 상대를 없애는 싸움에 능한 사람들이다. 오해하지 말아달라. 우리 군의 전투력을 철저하게 믿는다. 다만 그분들에게 경영은 맞지 않다.”(※방사청장은 이명박 정부 5대 장수만부터 문재인 정부 11대 강은호까지 12년간 민간에서 발탁됐다.)
-누가 방산 컨트롤타워인가.“무기수출 단계별로 있어야 한다. 계층적 컨트롤타워다. 수출 현장에서는 방사청이다. 국방부는 육해공군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대통령실은 여러 정부부처의 참여를 조율한다.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수출할 당시 문화재청까지 관여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유물 보존사업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50억 원을 마중물로 지원해 2조 원대 계약을 따냈다.”
-이 대통령이 곧 방산수출진흥회의를 주재할 텐데.“관심 갖고 있으니 마음껏 뛰라는 메시지다. 방산은 안보산업이다. 그래서 충성심이 강하다. 바꿔 말하면 사기로 먹고산다. 경청하고 격려하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K방산은 가성비 이미지가 강하다.“그래서 K방산을 브랜드화해야 한다. 한국 무기가 해외시장에서 유명한 것과 신뢰가 가는 건 다르다. 싸고 품질도 좋으니 같은 값이면 K방산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그렇게 인정하는 건 아니다. 가령 프랑스 샤넬과 우리 K뷰티 제품을 비교해보면 샤넬이 4, 5배는 비싸다. K뷰티 열풍이지만, 돈이 있는 사람들은 샤넬을 쓴다. 브랜드 로열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K방산이 호황일까.“소비자는 당장 필요한 걸 산다. 반면 무기는 4, 5년 이후의 잠재 수요가 현재 구매로 나타난다. 미국이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저버렸다. 서유럽도 동유럽도 각자 지켜야 한다. 동남아, 중동, 남미도 마찬가지다. 무기 수요가 굉장히 많다. 살아남으려면 전력 증강을 피할 수 없다.”
-방산수출 상승세가 꺾였는데 반등할까.“지난해 무기력하게 헤맸는데도 95억 달러를 수출했다. (계엄 사태로) 50억~60억 달러 계약이 올해로 넘어왔다. 올해 200억 달러는 넘길 수 있다. 내년은 300억 달러를 넘겨야 한다. 방산 4대 강국에 들려면 현 정부 임기 동안 매년 250억 달러 이상 수출이 필요하다. 추세를 다시 되돌리고 시장을 선점해야 지속 가능하다. 다만 현재 상태로는 어렵다. 환경은 마련됐지만 조직은 덜 갖춰졌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바꾸지도 못했다. 이후에야 행태가 달라질 수 있다. 꾸물댈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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