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이 만난 사람 이현순 중앙대 이사장
▶ 중·인 공대 열풍…한은 의대 쏠림·규제에 갈수록 경쟁력 추락
▶ SK하이닉스 HBM처럼 20~30년뒤 먹거리 될 기술 발굴 필요
▶ “AI·바이오·SMR 등 10개 첨단분야 집중 투자로 승부 걸어야”
“판사는 평생 수십 명의 생사를 좌우하고 의사는 수천 명의 생사를 좌우하지만 엔지니어는 수억 명의 삶을 좌우한다.” ‘엔진 영웅’으로 꼽히는 이현순(75) 중앙대 이사장의 신조다. 그는 미래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말을 꼭 들려준다. 그가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을 맡아 학생들에게 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의대 쏠림 현상으로 황폐화된 이공계 현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동차의 심장 격인 엔진을 자체 개발해 일본 등에 역수출한 데 이어 K2 전차 엔진 등을 개발해 방산 수출의 기반을 닦았다. 그는 “안타깝게도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려는 인재가 드물다”며 “대학이 과감한 혁신을 통해 톱클래스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26일 서울 흑석동 학교법인 중앙대 이사장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이제 ‘넘사벽’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첨단산업과 제조업에서 우리를 추월했다”며 “중국이 처음에는 기술을 받거나 훔치거나 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세계 최고의 인재에게 ‘맘껏 연구해보라’며 거액을 지원하며 앞서가고 있다”며 위기감을 표했다. 중국은 자동차·배터리·조선·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석유화학 등 제조업 수출 점유율에서 이미 우리를 제쳤고 AI·바이오·로봇·자율주행·우주항공 등 첨단산업에서도 훌쩍 앞서고 있다. 중국 이공계 대학 졸업자 규모가 우리의 40~50배에 달하고 인도에서도 공대 열풍이 부는데 우리 대학에서는 의대 쏠림 현상에다 각종 규제로 갈수록 세계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재앙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게 보이는데 정치권과 정부에서 뾰족한 대책이 없어 참 답답해요. 대학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데 대학은 재정이 고갈돼 외국인 유학생들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죠.”
이 이사장은 17년째 이어진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대학 실험실 장비가 낙후돼 마치 고철덩어리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AI와 반도체 등 요새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느냐”며 “대학의 연구·교육 장비와 기자재는 너무 형편없는 실정인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대학에 알아서 해법을 찾으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국내 대학들은 AI 교수를 제대로 뽑지 못하고 전기도 부족해 제대로 된 AI 연구를 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중국 대학들이 지속적으로 훌륭한 교수와 장비를 갖추고 연구비를 쏟아붓게 되면 우리 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국가 경쟁력이 추락할 수 있다고 이 이사장은 우려했다.
그는 “이공계 인재 배출도 안되고 좋은 연구 성과도 올리지 못하면 결국 제 발등 제가 찍는 것 아니겠느냐”며 “자칫 국가 경쟁력이 계속 떨어져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40여 년을 자동차와 전차 등의 엔진을 개발한 주역답게 다시 공학 열풍을 일으키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그는 1981년부터 박사급 연구원만 1200명이 넘은 미국 GM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고(故)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 등의 스카우트 제의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귀국했다. ‘독자 기술로 엔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믿고 “무모한 도전이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열망을 품은 것이다. 당시 현대차는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에서 비싼 가격에 엔진과 변속기 등의 핵심 기술을 들여오고 있었다. 귀국 후 정 명예회장을 면담하고 경기 용인시 마북연구소 구축과 연구원 선발에 나섰으나 미쓰비시와 유착된 상관으로부터 ‘되지도 않을 엔진 개발한다고 무슨 사기를 치러온 것이냐’는 힐난을 들었다. 회사 중역들은 미쓰비시의 심기를 거스를까 노심초사했고 상공부(현 산업통상부) 국장조차 “기술 도면을 사서 제조만 하면 된다”고 폄하했다.
그럼에도 독하게 마음 먹고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던 전자 분사식 멀티 밸브 방식의 ‘알파엔진’ 개발에 나섰다. 물론 사내의 팽배한 불신과 미쓰비시의 이간책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 번은 정 명예회장의 호출을 받은 자리에서 “미쓰비시가 아군입니까, 적군입니까”라고 되묻는 결기를 보이며 ‘얼른 실험해서 꼭 성공시키라’는 격려를 끌어냈다. 그러나 독일 출장길에 미쓰비시의 농간으로 신엔진개발실장에서 해임돼 복도에서 근무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GM에서 오라고 했지만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갈 수 없었지요.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6개월간 1만여 편의 논문을 읽으며 버텼죠. 현대전자 설립으로 너무 바빠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정 명예회장님이 나중에 알고 복귀 명령을 내렸어요.” 정 명예회장은 ‘엔진 개발을 없던 일로 하면 로열티를 절반 깎아주겠다’는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차 전 회장의 제안도 일축한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엔진 설계와 부품 협력처를 찾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1985년 시작품 1호를 내놓았으나 내구성 실험에 들어가자 계속 엔진이 깨지는 벽에 부딪혔다. 사내에서 다시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날렸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그는 꿈에서도 엔진 생각을 하는 집중력을 발휘해 난제를 해결했다. 드디어 2만 시간이 넘는 운항 시험을 거쳐 1991년 알파엔진과 자체 개발한 변속기를 내놓았다. 성공 직후 피로 누적으로 얼굴 근육이 마비돼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졌으나 그래도 뿌듯했다.
그는 이후 4년 만에 ‘베타엔진’을 내놓고 거의 1년마다 새로운 엔진을 출시했으나 미쓰비시의 방해 공작으로 ‘감마엔진’ 개발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더 좋은 ‘세타엔진’을 개발해 역으로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에 엔진 기술을 전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도요타의 방해 공작에도 하이브리드차 개발 또한 성공했다. 애초 목표했던 극일(克日)에 성공한 것이다.
현대차에서 27년간 40여 종의 엔진을 개발한 뒤 2011년 두산에 합류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차 중 하나인 ‘K2’ 전차와 장갑차 등15종의 엔진을 개발했고 세계 다섯 번째로 열병합발전소의 가스터빈 개발에 성공했다
국가적으로 정 명예회장처럼 도전 정신, 모험 정신을 일으켜서 경쟁국보다 먼저 첨단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이 이사장은 “AI, 첨단 바이오, 지능형 반도체, 자율주행, 소형모듈원전(SMR) 등 10개가량 첨단 분야에 집중 투자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과감한 투자를 해 성공한 것처럼 20~30년 후 대한민국이 먹고살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 정부에서 급감했던 R&D 예산이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약 30조 원으로 늘어나 다행이지만 그 돈을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대형 과제에 집중 투자하고 정권에 상관 없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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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정리=고광본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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