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나가사키 시장 저격 현장에서 경찰과 일부 시민들이 합세해 저격범을 덮쳐 붙잡고 있다. 그의 진짜 암살 동기는 사건 발생 수주가 지난 현재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저격범 시루의 모습. 올해 59세인 그는 사양화의 길을 걷고 야쿠자를 상징하고 있다.
초로의 야쿠자가 저격… 일본 사회 경악
내리막길 갱 스타의 몸부림인가, 아니면…
잘못을 저지를 때 마다 손가락 마디를 잘랐다. 속죄와 보상의 의미로. 그런데도 별로 낳아진 게 없다. 야쿠자 코드에 의하면 오야붕의 기분을 언짢게 한 문제의 멤버는 사죄의 뜻으로 손가락 마디를 절단하게 돼 있다.
시루 데추야는 나가사키의 야쿠자로서 이 같은 옛 법식에 충실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손가락 마디를 잘라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야쿠자 생활은 전 같지 않았다. 점차 어려워졌다. 시루가 보스에게 바쳐야 하는 상납금은 월 3천 달러다. 그 돈 마련이 쉽지 않은 것이다.
나가사키시는 그렇지 않아도 불황이었다. 오랫동안 비즈니스는 허덕였다. 거기다가 공공 공사로부터 돈을 우려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정부가 돈줄을 단단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프나, 걸프렌드에 얹혀사는 갱 멤버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아예 웰페어에 기대어 사는 찬구도 있었다. 시루도 돈을 마련하기위해 여러 가지에 손을 댔다. 그러나 되는 일이 없었다.
59세인 그는 건강문제도 지니고 있었다. 당뇨증세가 심해진 것이다. 시루는 한 때 ‘빅 맨’으로 통했다. 그런 그가 체중이 빠지면서 무표정하고 지친 사람같이 돼버린 것이다. 게다가 네 번째 아내와도 헤어졌다. 그리고 뒤늦게 얻은 네 살 난 아들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무기력한 늙은 야쿠자. 시루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폭력과는 이제 거리가 먼 존재로 비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시루가 어느 날 전 일본 사회를 경악케 한 것이다.
어느 날 한 시루의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시루의 셀 폰. 용건은 어디 가야 시장을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토 이츠토 나가사키시장은 선거를 맞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는 알아보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4시간 후 친구의 주선으로 시루는 시장이 방문하게 돼 있는 장소에 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 순간 시루는 시장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등에다 대고 총탄을 두발 발사했다. 도망치려던 시루는 측근들이 덮쳐 붙잡혔다. 목격자들은 그 당시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했다.
그는 쉽게 범행을 시인했다. 시장 살해 이유는 시당국이 공사 중 생긴 구덩이에 차가 빠져 대미지를 입었는데 보상을 해주지 않아 시장에 앙심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도 왜 그가 시장을 암살했는지 그 진짜 동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장과 야쿠자 간에 무슨 커넥션이 있었나. 그저 추측만 오갈 뿐이다.
“평생을 야쿠자로 보냈다. 한 때는 조직 내 2인자였다. 이런 그가 그런 사소한 일로 시장을 죽였다는 건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종신형을 받아 일생을 감옥에서 보낼 게 너무나도 빤한데.” 한 야쿠자 전담 수사관의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마도 그 살해 동기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내리막길, 코너에 몰렸다. 그런 그가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일을 저지른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스토리는 그렇지만 일면 일본의 전통적인 범죄조직 야쿠자를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고 있다. 한 때는 로맨틱한 이미지마저 주었다. 그 야쿠자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양화 추세…야쿠자 비즈니스
새로운 경제 환경 적응에 실패
야쿠자가 태동된 건 4세기 전이다. 봉건시대 일부 거리의 사무라이들이 독립된 계급으로 부상하면서다. 이후 야쿠자는 계속해 일종의 신비감에 둘러싸여 있었다. 전설이 생겨나고 그러면서 야쿠자는 터프하지만 나름의 명예의 코드를 준수하는 집단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야쿠자는 약자의 보호자로 인식돼 왔다. 과도한 공권력에 대한 견제세력으로도 생각됐었다. 일본의 낮은 범죄율은 바로 야쿠자 때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정치해결사로서, 과거 2차 대전 때는 또 군국주의 세력의 폭력하청조직으로서, 그리고 자민당의 굳은 일을 도맡아하던 용역단체로서의 야쿠자의 역할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전후 경제적 붐 시기 일본 사회에는 한 가지 양해사항이 있었다. 야쿠자 자체의 싸움이 밖으로 파급되지 않고 일반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없는 한 경찰은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쿠자가 정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야쿠자조직의 운영은 대부분이 공개적이었다. 야쿠자 사무실을 가보면 많은 명패가 걸려있다. 조직 내의 서열이다. 그 걸려 있는 명패만 보면 누가 보스인지, 누가 세력다툼에서 밀려났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경제가 거품이 심하던 시절 야쿠자는 전성기를 맞았었다. 유흥업소는 말할 것도 없다. 한참 잘 나갈 때 부동산업자들도 ‘야쿠자 커넥션’ 없이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다. 땅을 사들이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야쿠자가 나선다. 그러면 해결이 된다. 이런 식의 공생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공공 공사도 야쿠자로서는 만만치 않은 수입원이었다. 정부주도 대형 프로젝트가 발주된다. 그러면 야쿠자가 끼어든다. 공사를 기일 내에 끝나게 보장한다. 노사분규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조건을 내걸고 공공연히 커미션을 뜯어냈던 것이다.
야쿠자의 이미지가 퇴색되기 시작한 게 80년대 말께 부터다. 야쿠자간의 총격전에 일반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으면서다. 이후 조직폭력범죄에 대한 처벌법이 부쩍 강화됐다. 그리고 바로 뒤따른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은 야쿠자 비즈니스의 사양화를 불러왔다.
장사가 안 된다. 유흥업소는 파리를 날린다. 부동산 업계는 전체가 도산상황을 맞았다. 게다가 정부 주도의 공공사업에도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공부문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정부주도 프로젝트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됐다. 야쿠자의 돈줄이 마른 것이다.
돈이 마른다는 건 영향력이 감소됐다는 뜻이다. 야쿠자들에게는 힘든 시절이 닥쳐온 것이다. 보다 투명해진 새로운 경제 환경이 그들의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시루 같은 올드 스타일의 야쿠자들은 그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실패, 뒷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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