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말 타고 취임식장으로
제1회 선거로 헌법을 제정한 인사들이 공직을 차지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선거인은 만장일치로 워싱턴을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존 애덤스가 부통령이 되었다.
1789년 4월 워싱턴은 사저가 있는 마운트 버넌에서 말을 타고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할 뉴욕으로 향했다. 그가 트렌턴을 통과할 때 흰 옷을 입은 소녀들이 그가 지나가는 길가에 꽃을 뿌렸다. 뉴욕에서 그는 월가와 낫소가의 모퉁이에 있는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랑팡이 개축한 연방관(Federal Hall) 발코니에 나타나 파도와 같은 군중의 갈채와 환호성을 받으며 뉴욕 주 대법관이 바치는 성서에 엄숙히 선서했다.
여자들은 손수건을, 남자들은 모자를 흔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된 그의 얼굴에는 긴장과 위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타고난 위엄 덕분에 오래도록 아메리카의 전통이 될 만한 모범적인 취임식을 올렸다. 이후 4년마다 선출되는 신임 대통령은 영국인이 국왕의 대관식을 대하듯 존경과 감격을 품고 모여드는 수많은 군중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호칭 논란
대통령의 의전뿐만 아니라 호칭을 워싱턴 씨(Mr. Washington)라고 할지, 경(Sir)이나 대통령 귀하(Mr. President) 혹은 대통령 각하(President Excellency)라고 할지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상원의원은 공식 칭호를 ‘자유의 수호자,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로 하자고 제안했다. 한데 이것은 너무 크롬웰 같은 냄새가 난다는 말이 많았고 하원은 ‘미합중국 대통령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이라고 결정했다. 워싱턴은 여기에 만족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문제를 결정해서 기쁘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길 바란다.”
헌법에는 내각제도에 관한 규정이 없었지만 대통령에게는 보좌관이 필요했다. 또 대통령은 각 행정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당시에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국무장관 제퍼슨은 국내외 문제, 해밀턴은 재무, 헨리 녹스 장군은 군사를 담당했고 랜돌프는 검찰총장을 맡았다. 그밖에 새뮤얼 오스굿 Samuel Osgood 이 초대 우정장관이 되었다.
-민주주의자와 귀족주의자
대통령이 동료로 선택한 해밀턴과 제퍼슨은 서로 어긋나고 대립하는 정치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주자다. 이 두 사람은 인간성부터 대조적이라 어느 역사가든 둘을 말할 때는 대비해서 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밀턴은 저항파, 제퍼슨은 행동파를 대표했다. 부유한 농장주로서 다수의 노예를 둔 제퍼슨은 민주주의자였고, 사생아에다 재산도 노예도 없는 해밀턴은 귀족주의자였다. 프랑스 혈통에다 프랑스식 논리를 갖춘 해밀턴은 영국의 전통을 찬미했고 프랑스 혈통이 아닌 제퍼슨은 드니 디드로(프랑스 계몽기의 철학자)와 루소를 숭배했다. 모든 귀족주의자가 그러하듯 해밀턴은 비관론자로 사람은 사람을 먹이로 삼는다고 믿었다. 모든 민주주의자가 그러하듯 제퍼슨은 낙관론자로 사람의 천성은 본래 선한데 사회가 타락시킨다고 믿었다.
해밀턴은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제퍼슨은 정부가 가급적 무력해야 한다고 봤다. 성격이 열렬하고 완고한 해밀턴은 무질서를 증오했고, 대범하면서도 친절한 제퍼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때로 작은 소란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대기의 비바람 같은 자연의 조화다.”
-공업국이냐, 농업국이냐
해밀턴은 ‘부자, 현자, 선한 자’의 통치를 희망했고 제퍼슨은 평범한 보통사람이 통치하는 사회를 원했다. 해밀턴은 민중을 ‘커다란 짐승’이라 보고 제퍼슨은 ‘생각하는 육체’라고 했다. 성질이 급해 약간 꼬여 있고 때론 횡포했던 해밀턴은 “사람은 이치를 따지는 동물이긴 하나 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며 여론을 무시했고, 제퍼슨은 사람 자체뿐 아니라 여론까지 신뢰했다. 해밀턴은 미합중국을 공업국, 제퍼슨은 농업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해밀턴은 미합중국의 기반을 특권계급의 충성심, 제퍼슨은 대중의 애정에 두려고 했다. 제퍼슨은 출신 주의 독립에 애착을 보였고 해밀턴은 연방정부를 강화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각 주를 약화시키려 했다.
가장 기묘한 것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믿은 해밀턴은 낭만주의자였고, 자신을 이상주의자라고 믿은 제퍼슨은 현실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해밀턴은 은행가의 지지를 얻으려 애썼고 제퍼슨은 농민의 지지를 바랐다. 세상에는 은행가보다 농민의 수가 더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두 사람은 이념과 사상이 달랐을 뿐 아니라 외모와 태도도 그에 못지않게 판이했다. 해밀턴은 몸집이 작고 날씬하고 우아했으며 흰 명주양말을 신고 앞가슴에 레이스 주름을 붙인 상의를 입었다. 또 붉은 색이 감도는 금발에 가루를 뿌려 프랑스식으로 매고 다녔고 아름다운 푸른 눈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애독하며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을 꿈꿨다.
이와 달리 제퍼슨은 옷도 제대로 입을 줄 모르고 행동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청년기에 그는 서부 버지니아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친구들과 토지를 개간하고 인디언과 맞서면서 자치 통치하는 걸 목격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이 시기에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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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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