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정부 불체자 단속 확대, 한인경제도 직접 영향권
▶ 대형 식품점·건축·식당 등 비즈니스 근간 흔들

불체자 단속이 확대되면서 라티노 사회뿐 아니라 라티노 종업원을 둔 한인업소들도 긴장하고 있다.
“센터빌의 모 한인 식품점에 14일 낮 단속반이 들이닥쳐 불법체류 신분인 라티노 종업원 10명가량을 잡아갔다 하더라.” 당국이 한인 식품점을 급습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15일 워싱턴 지역 한인식품업계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해당 업체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식품업계는 사실 확인에 나서는 등 분주한 날을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법체류자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대대적 단속이 이뤄지면서 이민자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오늘‘라티노 노동자 파업’ 단행 여파에도 촉각
특히 이번 단속이 멕시코를 비롯해 중남미계 이민자를 겨냥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히스패닉 이민사회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덩달아 라티노 종업원들을 대거 고용해 영업하고 있는 한인 경제도 휘청거릴 조짐이다.
불법체류 라티노 단속설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한인업계는 역시 대형 식품점들. 종업원의 60~70%가 라티노인데다 이들 대다수가 불법 체류 신분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에 소재한 대형 한인 식품점의 한 관계자는 “13일 이뤄진 불체자 단속 이후 라티노 직원들이 불안해하며 동요하고 있다”며 “자신도 잡혀가지 않을까 염려해 상황을 좀 더 지켜본 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갈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들 한다”고 엄중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라티노 고객들은 불안감에 지출을 삼가는 분위기라 매출도 위축되고 특히 단속이 강화되면 일할 사람이 없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갑갑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사정은 라티노 종업원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는 건축업, 세탁업, 식당 등 한인경제의 주력업종들도 마찬가지다.
한인 건축업계는 요즘 인력난 비상이 걸렸다. 한인업자의 영업 및 기술력과 라티노들의 노동력이 결합한 형태인 비즈니스 운영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30여년간 건축회사를 운영해온 K씨는 “안 그래도 일거리가 없는데 불법체류자 단속설이 나도니까 라티노 헬퍼들이 눈에 뜨이면 잡혀갈까봐 몸을 사리고 나오지를 않는다”며 “일부는 콜로라도나 미시건 등으로 옮겨가는 등 일할 사람 구하기가 벌써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불체자 라티노들을 쓰는 것도 겁이 난다”며 “하루에 끝날 일을 2~3일에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대책이 없다”고 눈앞에 닥친 현실을 막막해 했다.
한인세탁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탁소마다 3명 내외의 라티노 종업원들을 두고 다림질 등을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불체자 체포 소식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한인세탁협회의 한동철 이사장은 “라티노 종업원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기 나라로 간다는 이들도 있다”면서 “라티노 종업원들과 함께 협조하며 공생해온 시스템이 무너지면 우리도 아찔하고 그들도 먹고 사는 문제인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한인세탁협회는 오는 3월 초 새 회장 취임식을 겸한 모임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도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한인 요식업계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한식당들은 5-10명의 라티노 종업원들을 고용해 요리와 설거지, 야채 다듬기 등을 맡기고 있다. 대다수 불체자인 이들은 한인 종업원의 60~70%의 임금으로도 고용이 가능해 불황에 시달리는 한인요식업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애난데일의 한 식당 업주 B씨는 “안 그래도 손님이 없는데 라티노 종업원들마저 잡아가면 장사는 다 했다고 보면 된다”며 “요즘 걱정이 돼서 잠도 안 오고 마땅한 대책도 없어 더 난감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의 불똥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DC 지역의 라티노 노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반 이민정책에 항의 차원에서 1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일일 파업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날 일부 라티노 종업원들의 파업 참가로 상당수 한인업체들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내일 라티노 종업원들이 한 명도 출근 않겠다고 합니다. 이를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메릴랜드 애나폴리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A씨는 15일 본보에 전화를 걸어 답답한 듯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A씨는 인근 맥도날드의 사정도 전해주었다. 라티노 종업원들이 16일 실시되는 워싱턴 지역 파업에 동참하기로 해 맥도날드는 어쩔 수 없이 이날 문을 닫기로 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십수년간 비즈니스를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대형 한인식품점은 라티노 종업원의 절반가량이 파업 참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정상 영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인 식품점의 한 관계자는 15일 “라티노 종업원들이 뒤숭숭한 분위기인데 내일 돼봐야 얼마나 출근을 안 할지 알 것 같다”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일부 식당에서도 라티노 종업원들이 파업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16일 일손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등 한인권익단체에서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은 일시적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며 한인 업계에서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 대책을 세울 것을 권했다.
<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