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순』은 『원미동 사람들』로 잘 알려진 양귀자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98년 초판 출간 이후 몇 차례 수정을 거쳐 다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20대 여성의 삶을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와 인간 본성의 모순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진진은 어릴 적 외출하듯 세 번이나 가출했다. ‘진실’의 ‘진’이 너무 무겁다며 아버지가 즉흥적으로 이름을 ‘진진’이라 지었지만, 성이 ‘안’이라서 결국 ‘안진진’이 되었다. 이름 자체가 이미 모순을 담고 있다. 진진은 좌판에서 양말을 파는 어머니,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않은 동생 진모와 함께 살아간다.
진진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언니다. 똑같이 생긴 어머니와 이모는 같은 날 태어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결혼 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엄마는 가난하고, 이모는 부자다. 모습은 닮았지만 삶은 극명하게 갈린다. 공평하지 못한 세상이라고 느낀 어머니는 이모에게 자꾸 트집을 잡고 싶어 한다.
진진은 세련되고 자상한 이모를 좋아한다. 이모가 자신의 친어머니였으면 하고 바라며, 남자친구에게도 이모가 어머니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돈 잘 버는 남편, 외국에 유학 중인 아이들, 고급 음식과 비싼 선물 속에서도 이모는 늘 허전하고 외롭다.
아버지는 술과 폭력, 무책임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주민등록부에는 ‘행방불명’으로 기록된 그는 가정을 감옥처럼 여겨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한다. “해 질 녘 낯선 길에 서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쌉싸름한 집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진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또 떠난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진진은 그런 부모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는다.
동생 진모가 또 사고를 친다.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새로 시작하려던 가게를 포기하고, 그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불행을 한탄하면서도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며, 오히려 삶의 활력을 얻는다.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온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에게 불행은 삶의 동력이다.
어쩌면 불행에 위로가 되는 건 타인의 불행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억울하다는 마음만 덜 수 있다면 불행은 생각보다 쉽게 극복된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려 했던 바로 그 불행일지도 모른다.
이모의 아이들, 즉 진진의 사촌들은 언제나 세상에서 ‘좋다’고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삶의 다양성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의 숨은 비밀을 배울 기회조차 없이 살아간다. 진진에게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행처럼 보인다.
스물다섯의 진진은 두 남자를 만난다. 감정이 통해 사랑을 느끼는 남자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못한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그녀를 옭아매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반면, 정확하고 계획적인 남자에게는 다소 답답함을 느끼지만, 집안일이나 동생의 문제까지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사랑과 현실, 이상과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 년간의 성찰 끝에 진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어머니처럼 불행한 결혼을 견디는 이도 있고, 이모처럼 풍족한 삶 속 권태에 지쳐 삶을 포기하는 이도 있다. 진진은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행복과 불행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깨닫는다. 겉보기의 풍요가 내면의 만족을 보장하지 않으며, 불행 속에서도 삶의 의지는 다시 움튼다.
작가는 말한다. “삶의 비밀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상 속에 숨어 있다. 행복만큼이나 불행도 삶의 일부다. 행복 이면에는 불행이, 불행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어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썼지만, 삶은 여전히 어렵다”고 고백한다.
읽는 동안 모순투성이 삶 속에서도 묘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그 행복은 분명한 해답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 비로소 견딜 만해진다. 양귀자의 문장은 그런 불완전한 우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다시 하루를 살아낼 용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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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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